top of page

사적인 산책

 

오세희

트레팔지에 실크스크린, 크레파스/ 사운드/ 설치

 

 

-

안양에 있는 내 방도 집이고 부산의 집도 집이다. 가끔, 아니 자주 허공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든다. 분열되는 기분이다. 카메라나 글에 비친 서로의 일부만 보다가 현실에서 만나면 서로가 잔상처럼 느껴진다. 부산에서 방학을 보내다가 안양으 로 돌아가면 내가 꼭 유령처럼 느껴지고, 방학 때 부산으로 돌아가도 마찬가지다. 내가 안양에 없는 동안 놓치는 일들과 부 산에 없는 동안 놓치는 일들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빈 구간을 만드는 것 같다. 390~400km 내외의 거리가 버퍼링을 만들 어 낸다. 물리적으로 멀어진 만큼 이야기가 전달되면서 소거되는 부분이 있다. 아주 빠른 속도로 395km 정도의 거리를 달 려오면서 모든 것이 다 타버리고 잿더미만 서로에게 도착하는 것 같은 때도 있다. 열화된 목소리, 흐려진 영상, 짧게 줄여 진 글들. Oh ring이라는 슬로건은 이런 감각을 바인더에 정리하고 싶단 생각과, 그것에서 비롯된 내 강박적인 태도를 버리 고 완벽하지 않은 것도 포용하자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수업을 진행하며 이런 감각이 수작업으로 찍어낸 프린트들과 닮 았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똑같은 위치에서 같은 물감으로 같은 종이에 같은 판으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묘하게 달라 진다. 번지기도 하고 잉크가 굳어 찍히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멀리서 전해지는 소식들은 순서가 바뀌거나, 무언가가 전달되지 않음으로 인해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트레팔지를 이용하여 배치와 순서에 따라 다른 이미지가 되도록 하였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