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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나그네

 

엄소윤

실크스크린,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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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는 땅과 하늘과 그 밖의 모든 것, 세상이 있어야 그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문득 멈추어 서서, 고개 숙여 내려다본 발등 위에 성찰이 머물다 가기를 바란다.

 

 

 

실크스크린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와 오염물질은 내 슬로건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스테이플러 심과 박스테이프는 기본이고, 잉크와 감광액을 물에 씻어내고, 그 양을 줄이고자 많은 양의 물티슈와 휴지를 써 닦아내고 버린다. 사용한 도구와 책상을 청소할 때도 역시 잉크가 쉽게 지워지지 않아 물티슈를 수십 장 뽑아내고서야 겨우 깨끗하게 닦을 수 있다. 작업을 마치고 나서도 화학물질의 고약한 냄새와 손에 묻은 잉크는 더 오래 남는다.

 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시도했다.

<천연재료로 실크스크린 작업하기 >

1. 판 짜기

기존 실크스크린 방법과 같고, 테이핑은 선택사항으로 둘 수 있다.

 2. 도안 옮기기

감광액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감광 대신 수작업으로 도안을 실크에 옮긴다. 밀가루 풀을 바르고 완전히 말리면 판이 막힌다.

3. 잉크 만들기

원하는 색의 천연염료와 점성을 더할 재료(아라비아검, 설탕, 전분, 꿀…)를 준비하고 농도를 맞춰가며 끓인다. 식으면서 점점 굳기 때문에 너무 되직하게 끓이지 않는 것이 좋다. 필요에 따라 매염제(명반, 식초 등 염료에 맞는 재료)를 추가한다.

4. 인쇄하기

기존 실크스크린 방법과 같다. 다만 판을 여러 번 닦아내며 작업하면 밀가루 풀이 녹아 도안이 망가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재료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쉽게 만들 수 있다. 천연재료이기 때문에 물티슈 대신 걸레를 빨아가며 사용할 수 있으며 뒷정리가 간편하다. 화학물질 특유의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있고 신체에도 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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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해롭고 부자연스러운 관습에서 벗어나는 나름의 과정이다. 느리더라도 분명히 바꿔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서툰 행위를 즐기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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